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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 하십니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by jiyoung.park 2023. 10. 20.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612096

밀리의 서재 모바일 기준 페이지 장수를 표시한 것이라 실물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역자의 글>

p.3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를 가리켜 흔히들 염세주의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그가 남긴 몇 권의 책과 60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일기와 1만 페이지가 넘는 메모와 그의 인생관을 확립시켜준 스승인 괴테가 보낸 “당신이 삶에서 아주 작은 기쁨이라도 느끼고 싶다면 당신은 이 세계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서한들을 보면, 그는 분명 극도의 비관론자였습니다. 

 

p.9

시대는 점점 더 포악스러워지고, 그에 비례하여 인간성까지 날로 강퍅해지고 있으나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라는 사람밖에 없다”라는 진리를 가슴에 새긴 젊은이들은 이 험한 시대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표상’으로 남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다수는 그저 많은 숫자일 뿐, 많다고 정의가 되는 건 아니다>

p.17

인생에 진리는 없다. 삶은 어리석은 동화일 뿐, 그래서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세상은 내가 틀렸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세상이야말로 내 눈엔 전부 실수와 오류투성이다. 오류와 허위로 둔갑한 것들이야말로 진실이고, 진리와 신성으로 과장된 것들이야말로 진짜 오류다.

옳고 그름 따윈 없다. 다수는 그저 많은 숫자일 뿐, 많다고 정의가 되는 건 아니다. 적음을 무능력하다는 편견으로 뒤집어씌우는 것에 반대한다. 윽박질러도 따라가지 않겠다. 그것이 ‘도덕!’이라고 외쳐도 듣지 않겠다. 여기가 내 한계라고 한다면, 한계라는 사물을 결정하는 건 오직 나의 인식뿐이라고 가르쳐줄 테다. 

 

<산책의 동료는 '고뇌'로 족하다>

p.19

좋은 습관을 기르는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인내다. 인내는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 몸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깨닫고 그 범위 안에서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인내다. 견뎌내지 못할 때까지 버티는 건 멍청한 짓이다. 몸과 마음이 불쾌해지지 않는 기준을 정리해 오래도록 지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평범한 생활이 나만의 고유한 재능으로 인정받는 날이 온다. 

 

p.21

특별함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은밀하고 개인적인 일상 속에서만 특별함이 갖춰지는 것이다.

 

<현명할수록 명예와 체면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를 안다>

p.27

현명할수록 명예와 체면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를 안다.

...

사람이 체면을 중시하는 까닭은, 내세울 인간성이 직분에서 얻은 명예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다. 능력이 없으니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도 못하고, 그런데 또 권력은 욕심나고, 그러니 스스로 자기 이름에 금칠을 해버리는 것이다. 

...

안타깝게도 지금 이 사회에서 명예란,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 나 혼자 주창하는 권리. 타인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휘두르는 입속의 칼날. 증오하는 자들과 맞서 싸우는 위협의 명분으로 남용되는 중이다. 

 

<누구나 자신의 산에 오르기를 꿈꾼다>

p.31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은 우리가 얻고자 노력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장애물을 뛰어넘거나 치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는 고난의 정체였다. 

...

시간이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게을리 걸어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할 날이 오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하루하루 전력을 다하지 않고는 그날의 보람은 없다. 보람 없는 날들의 반복으로 최후의 목표가 달성될 리 없다. 위대한 인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을 통해 만들어진다. 

 

<늙음의 덧없음>

p.33

천지간에 흥망은 시간의 장난질을 감당하지 못한다. 영웅도, 국가도 시간 앞에 무력하다. 세월은 모든 것을 녹이는 거대한 용광로처럼 우리의 삶을 조금씩 녹여 이름 없는 대지에 부어버린다.

세상에 진실한 것이 있을까. 진지하게 마주하고도 상처받지 않을 희망이 존재할 수 있을까. 세상은 그저 먼지 쌓인 침대와 같아서 인생은 눕기를 바라고, 잠들기를 바라고,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소원도 없다. 사람을 자살로 이끄는 절망도 따지고 보면 찰나에 주어진 통증 같은 것이다.

 

p.35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행복의 유무에 대한 증거로 행복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추억을 제시하는데, 진실은 그렇게 내세운 그리운 추억들이 모두 거짓이라는 데 있다.

 

<인생에서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p.38

삶에 더없이 집착하는 자에게 죽음은 더 빨리 찾아오고, 오히려 죽음을 기다리는 자에게 삶은 더욱 긴 시간을 펼쳐놓는다. 불명확한 인생에서 죽음보다 확실한 사실은 없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보다 명확한 전제는 없다. 죽음 앞에 놓인 인간의 운명은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올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보다, 해가 지면 어둠이 찾아온다는 눈으로 목격한 사실보다,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날이 시작되리라는 부푼 기대보다 더욱 명확한 진실이다. 

그러나 사람은 내일을 준비하고, 어둠을 대비해 거실에 불을 밝히고, 봄을 기대하며 두꺼운 털옷은 정리해도, 내일 찾아올지 아니면 잠시 후 저녁에 찾아올지, 혹은 내년 봄에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죽음의 준비는 오직 이것뿐이다.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 두려움과 아쉬움과 남겨진 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죽음의 눈치만 보던 우리들이 당당하게 죽음과 대면하여 공포도, 후회도, 근심도 없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 보다 나은 삶이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지켜주는 유일한 보호막임을 기억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를 개인으로 바라봐주지 않는다>

p.43

인간은 자기 자신을 타자의 의식 속에서 정립한다. 내가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생각함으로써 나와 타인을 구별하게 되고, 남과 다른 나의 개별성을 지향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이 상호 간에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기반이다. 타인을 인정한다는 것은 나의 의식 속에 타인의 개별성을 끌어들여 나와 별개의 존재임을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나와 마주 보고 있는 한 사람을 나와 구별되는 개인으로 판단하여 그 사람을 나처럼 자유로운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인데,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정확히는 부모가 자녀를 바라볼 때, 부모는 타인에게 허락하는 기본적인 인정조차 자녀에겐 허락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타인처럼 개인이 구별되지 않아서다.
부모는 자녀를 개인으로 바라봐주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자녀의 속성이 자기 안에 갇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의 결과물이며, 자신이 사랑에 빠진 거룩한 대가로서 주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녀 또한 타인과 마찬가지로 나와 구별되는 하나의 개인임을 인정하는 부모는 매우 드물다. 자녀를 개인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자녀를 향한 애정이 없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부모도 많다. 자녀를 나와 동등한 개인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자녀도 그에 대한 상호반응으로 부모를 개인으로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부모도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개인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녀는 부모의 모든 것을 자기 소유로 인식해버린다. 

부모에겐 개성도 없고, 감정도 없고, 오직 나를 위해 일생을 내 노예처럼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공급해주는 하나의 물건으로 부모를 취급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모든 불행이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됐음을 상기한다면, 사랑이야말로 한 사람의 일생을 추락시키는 가장 근원적인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가진 자에게도, 다스리는 자에게도 '장수'는 징계다>

p.46

사람들은 사는 게 괴롭다는 말을 쉴 새 없이 반복하면서도 그 지겹고 힘든 삶을 종료시켜 줄 사건과 질병을 회피하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 위로를 받는 이유는 사소한 일에 고통받기 때문이다>

p.53

행복을 손에 넣고 싶다면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 혼자만을 위한 행복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행복, 인류의 진보, 문명과 예술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다고. 모두 거짓말이다. 그들의 수고는 개인의 야심을 채우기 위한 지극히 사적인 노력이다. 

 

<행복이란 단어를 제거하면 행복할 수 있다>

p.56

견유학파(소크라테스의 제자 안티스테네스가 창설한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학파)가 향락을 배척한 이유는 향락에는 다소나마 고통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간의 고통이 따르는 향락보다는 향락이 없는 대신 고통도 없는 삶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통을 없애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당연한 결과로서 그들은 삶이 조금도 기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의 삶은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인생은 불행해지기는 쉬워도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위선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그 선택이 지혜의 시작이다. 

 

<자신이 증오스러울 땐 자는 것이 최고다>

p.67

반성은 자기혐오다. 자기 자신이 하찮게 느껴질 때 인간은 뭔가 반성할만한 건수가 없는지 두리번거린다. 뭘 해도 기운이 나지 않을 때 인간은 무턱대고 반성하며 자아를 성찰한다. 그럴 바에야 아무 생각 없이 잠자리에 드는 편이 낫다. 자신이 증오스러울 땐 자는 것이 최고다. 도박도, 기도도, 명상도 도움이 안 된다. 여행도 도움이 안 되고, 술을 먹어봐야 자기혐오만 짙어질 뿐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인간의 불행 중 상당수는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기는 일이다>

p.70

인간의 불행 중 상당수는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기는 일이다. 사교성은 도덕적으로 떨어지고 지적으로 우둔하거나 불합리한 사람과 접촉하게 만드는 성격이다. 위험하면서도 해롭다. 비사교적이라는 것은 사교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므로 그 자체만으로 큰 행복이다. 인간이 겪는 모든 고뇌는 교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p.71

어쩌면 고독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경험과 고뇌의 결과로 만들어진 관념일 수도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교제해서 무엇을 얻겠는가.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자신의 본성에 깃든 가장 저급하고 비열한 부분, 즉 일상적이고 비속하며 천박한 부분을 매개로 끄집어낼 수밖에 없다. 공동체는 말 그대로 공동의 가치관과 동질성이 있어야 하는데 모든 인간이 같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집단의 정신 수준을 가장 어리석은 자에게 맞춰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성은 타인의 높은 수준에 맞춰 나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가장 낮은 수준에 맞춰 나를 떨어뜨리는 행위가 된다. 공동체를 존속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저급한 인격을 고상한 인격으로 교육하기보다는 고상한 인격이 저급한 인격을 흉내 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왜 다른 사람의 판단에 휘말리는 것일까?>

p.72

나는 왜 다른 사람의 판단에 휘말리는 것일까? 나에 대한 그들의 평가에 울고 웃는 것일까? 왜 그들의 눈웃음에 화가 나고, 그들의 존경 어린 시선에 우쭐해지는 것일까? 내 삶을 평가하고 재단할 권리가 내게 있음에도 나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내가 바라보는 나보다도 그들이 바라보는 나를 더욱 사랑한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 결론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나는 정직하지가 못했다. 내가 정직한 인간이었다면 나는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높게 평가하는 데에 두려워했을 것이고, 나를 비웃는 조롱에 감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작은 비판에 분노하고, 입에 발린 칭찬인 줄 알면서도 교만했다.
인간은 정직해져야 한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져야 한다. 지금 나는 본래의 내가 가진 능력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평가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은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이다. 

 

<우정을 우연에 맡겨서는 안 된다>

p.80

인격을 갖춘 친구의 선의의 비판이 우리를 선량한 길로 이끈다. 그의 충고는 부모, 스승, 정부의 법률보다 훨씬 고귀하고 강제적이다.
그러므로 우정을 우연에 맡겨서는 안 된다. 나를 사랑하는 친구는 나의 슬픔을 쫓아내고, 나로부터 웃음 짓기를 원하는 친구는 내게 슬픔을 가져온다. 한 가지 더 충고하자면 우정은 두 사람 중 한 명이 보다 부유해졌을 때 금이 간다. 

 

p.81

좋은 친구를 찾는 법은 인간에 관한 판단이다. 이때 기준은 예의다. 예의가 바른 사람은 타인과의 의견이 대립될 때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서 최대한 공정한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그 같은 노력의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이런 시도가 우정을 형성하고 지속하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예의가 바른 사람은 자기 생각이 옳은 것처럼 상대방의 생각도 그의 입장에서는 옳은 선택임을 인정할 줄 안다.
반대로 내면이 비천한 사람은 그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인정하듯 모든 사람이 자기를 사랑해주고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자들과 싸우느니 예의 바른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 다투는 편이 낫다.
 

p.82

인간은 언젠가 늙고 병든다. 오늘의 성공은 내일의 나와 함께 해주지 않는다. 늙고 병들었을 때 나를 가장 먼저 시기하고, 비난하고, 함정에 몰아넣는 것은 오늘의 성공이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p.84

우리는 서로 보듬고 안아줄 수 있다.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는 없지만, 아끼고 감싸줄 수는 있다. 그 친절에 감사할 수 있고, 내가 지쳐 쓰러졌을 때 누군가가 나를 안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타인에게 비판을 당하는 것이 불쾌하다면 나부터 타인들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는 것이 옳다. 시험 삼아 무엇이든 비판하고 싶어하는 나의 버릇을 잠시 중단해야겠다. 

 

p.86

젊은 날의 희망도 산산이 깨어지고, 소년 시절의 꿈도 여름날의 오후처럼 찌들어버렸다. 잎의 죽음을 재촉하는 바람이 나를 향해 불어오고 있다. 그 바람이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게 느껴질 때 나는 낙엽처럼 저물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낙엽처럼 힘없이 추락할 때 바람에 말하고 싶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러니 후회하지 않는다고. 너를 미워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p.91

현실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이유는 그에게 칭찬을 듣고 싶어서다. 내가 그를 경멸하는 이유는 그가 나보다 훌륭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머리를 쥐어뜯기라도 해야 그의 면전에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이 같은 조급함과 달리 확고한 자의식을 갖춘 사람들은 타인의 칭찬이나, 재촉, 경멸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하든 상처받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를 줄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자의식이야말로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나가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내 고집만 부리는 원인은,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를 시기하고 어떻게든 깍아 내리려고 고집을 피우는 원인은, 자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시선으로 나를 보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나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나와 나의 관계가 온전히 성립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나와 나의 관계도 온전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온전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며, 허영이며, 교만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다면 사람들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소유는 만족이 아니라, 의무의 시작이다>

p.108

내 뒤에는 그림자뿐이다. 그곳에는 내가 아쉬워해야 할 그 무엇도 없다.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는 것과 과거의 실패에 얽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는 상처를 기억하고 싶다. 하지만 그 상처에 언제까지나 아파하고 싶지는 않다. 

 

<나보다 비참한 자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p.113

즐거움, 행복, 만족은 소극적인 감정이다. 이런 감정에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대상이 없다기보다는 대상보다도 현재의 감정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에는 대상이 따른다. 절망에도 대상이 따른다. 고뇌에도 이유가 있다. 다시 말해 '대상'이 있다.

외부와 내부의 충돌, 세계와 나의 충돌이 일어난다. '의지'가 출현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 '대상'이 나를 절망하게 만들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순간이 짧게 느껴지고, 절망의 시간이 영원할 듯 보이는 까닭이다. 

 

p.114

당신의 오늘이 행복했다면 내일은 오늘의 행복이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어제의 행복으로 오늘을 만족하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재앙으로 당신의 내일은 행복해질 수 있다. 질병, 박해, 몰락, 폭행, 실명,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당신의 오늘은 내일의 행복에 필수적인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성장이 아닌 '개조'에 있다>

p.118

의지뿐인 인생은 야만이다. 그러나 의지는 후회하지 않는다. 인식은 인간이 가장 자랑할 만한 지적 활동이지만, 의지라는 토대에서 발생하지 않은 인식은 조건 없는 수용에 불과하다. 그 같은 인식에 ‘자아’가 깃들 리 없다.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

p.127

충고가 필요한 사람일수록 간섭을 싫어하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일수록 동정을 증오한다.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

p.134

불행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태만이나 무모함, 불성실을 후회하기에도 늦었다. 불행은 그 자체로 징계다.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이 된다. 명백히 저지른 실수에 대해 변명하거나 축소하거나 미화할 필요는 없다. 깨끗이 인정하고 징계를 받고 우연히 생긴 비극으로 인생의 페이지에 적어둔 뒤 책장을 덮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범죄자를 위한 사회의 헌신은 공짜가 아니다>

p.147

주위의 누군가가 불행과 고뇌라는 전염병을 보유하고 있다면 머잖아 근처의 모든 사람이 불행해진다. 더불어 산다는 것이 꼭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내 주위의 누군가가 고통받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나를 보지 않더라도 정직할 것>

p.185

내가 나에게 부여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새롭게 평가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남보다 고상한 사람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나의 자존심을 정당하게 만들어줄 것이며, 나는 나의 자존감을 떳떳하게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통해 나는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나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이다.

 

 

<'고독'과 '권태'는 나의 말이 되었다>

p.197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삶은 기껏해야 두 종류뿐이다. 권태에 시달리든지,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다. 권태도 반복되다 보면 고통이 되고, 잦은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무감각한 권태가 된다. 어차피 인간은 권태로운 존재다. 우리가 기쁨보다 고통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처음에는 괴롭겠지만, 언젠가는 기쁨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런 단계에 도달하면 인생은 더는 고통스럽지도, 권태롭지도 않은 평범한 그 자체가 된다. 그것으로 고난은 끝이다. 

...

인생이 두려운 까닭은 나의 의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고, 사람이 두려운 까닭은 그의 의지가 나를 지배하게 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에게 필요한 물건이 되길 거부하겠다>

p.224

분노를 다스리기란 몹시 어렵다. “당신은 화를 내고 있다. 그 때문에 당신은 틀렸다.”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이에 대한 증거가 몇 가지 있다. 화를 내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이성적이지 못하다. 분노란 이성적인 인간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분노는 자신의 상처가 파헤쳐졌다고 생각될 때 극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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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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