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소리 (Speech Sounds) - 옥타비아 버틀러 단편선, 블러드 차일드

그녀는 뒤늦게 그가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쓸 수도 있겠지. 그녀는 돌연 남자가 미워졌다. 깊고 쓰라린 미움이었다. 남자에게 읽고 쓰는 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 커서 경찰 놀이나 하는 남자에게! 하지만 그는 읽고 쓸 수 있었고 그녀는 아니었다. 영영 읽지도 쓰지도 못할 것이다. 그녀는 미움과 좌절과 질투에 속이 쓰렸다. 그녀의 손에서 몇 센티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장전된 총이 있었다. 라이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피가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분노는 최고조에 달했다가 사그라들었고, 라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옵시디안은 머뭇거리면서도 친근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라이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드러나 있었다. 아직 남아 있는 인간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표정을, 그 질투를 못 알아볼 수 없었다.
라이는 지친 기분으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과거에 대한 갈망도 경험해보았고, 현재에 대한 미움도, 점점 더해가는 절망과 무의미함도 경험해보았지만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그렇게 강하게 경험해본 적은 없었다. 그녀가 결국 집을 떠난 것은 점점 자살할 것 같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살아남을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옵시디안의 차에 탔는지도 몰랐다. 예전에 그녀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는 그녀의 입을 건드리고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으로 재잘거리는 흉내를 냈다. 말할 수 있냐고? 라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옵시디안이 그녀보다 온화한 질투를 경험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는 둘 다 받아들이기 위험한 사실을 받아들였고, 그래도 폭력 사태는 없었다. 그는 자기 입과 이마를 두드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말을 하지도, 말로한 언어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질병이 그들을 가지고 놀면서 각자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능력을 빼앗아간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라이는 죽은 살인자를 흘낏 보았다. 부끄럽게도 그 남자를 내몬 격정을 일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남자가 누구든 말이다. 분노, 좌절, 절망, 정신 나간 질투심······ 바깥에 그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더 있을까. 자기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을 파괴하려 드는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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