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5

<모순>, 양귀자 , 양귀자 p.14 중요한 것은 결국 돈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 외 몇 가지 신상명세를 추가할 수도 있겠다. 가령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라든지, 혐오스럽지도 경이롭지도 않은 외모를 지녔다든지, 이것저것 잡동사니로 읽은 책이 꽤 되어서 그럭저럭 머릿 속은 채우고 있는 편이라든가 하는 것들. 그리고······. 그리고 뒤에 더 이상 이을 말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 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p.20 인생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야야.. 2023. 11. 4.
<밝은 밤>, 최은영 p.14 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p.. 2023. 10. 26.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 하십니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612096 밀리의 서재 모바일 기준 페이지 장수를 표시한 것이라 실물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p.3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를 가리켜 흔히들 염세주의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그가 남긴 몇 권의 책과 60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일기와 1만 페이지가 넘는 메모와 그의 인생관을 확립시켜준 스승인 괴테가 보낸 “당신이 삶에서 아주 작은 기쁨이라도 느끼고 싶다면 당신은 이 세계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서한들을 보면, 그는 분명 극도의 비관론자였습니다. p.9 시대는 점점 더 포악스러워지고, 그에 비례하여 인간성까지 날로 .. 2023. 10. 20.
<특사>, 옥타비아 버틀러 [블러드 차일드] 특사 - 옥타비아 버틀러 노아는 기억을 돌이키며, 그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잠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한참 만에 말했다. “맞아요. 대부분 시간 동안 실제로 나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은 다른 인간이었다는 점만 빼면요. 외계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우리를 둘씩 아니면 더 여러 명씩 가둬놓고 며칠, 몇 주를 두곤 했어요. 보통은 나쁘지 않았지요. 하지만 나빠질 때가 있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정신이 나가버렸죠. 맙소사, 우리 모두가 한 번씩은 정신이 나갔지요.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폭력적으로 변했어요. 커뮤니티들의 도움 없이 깡패가 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그 사람들은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도 휘두를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 작.. 2023. 10. 17.
<칵테일, 러브, 좀비>, 조예은 칵테일, 러브, 좀비 - 조예은 단편선 * 밀리의 서재 - 모바일 기준 페이지로 실물 책과 페이지 넘버가 다를 수 있습니다 p.41 물의 공백을 메운 건 대부분이 생각들이었다. 시간이 많아지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우울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아주 나중에, 물고기들이 다 사라지고 하천이 말라붙은 후에도 계속될 삶을 상상하면 질긴 수초가 목을 조르는 듯한 갑갑함이 밀려오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물은 생각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냥, 수표면에 동동 뜬 채 떨어지는 나뭇잎을 세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살았다. p.53 하천에서 나갈 수 없는 몸뚱이도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숲은 늘 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까.” 물은 갈수록 숲이 궁금해졌다. 궁금함은 갈증 같아서, 물속에 있는데도 목이 말랐다... 2023. 10. 17.
<한지와 영주>, 최은영 [쇼코의 미소] 한지와 영주 - 최은영 p.143 "넌 낭비를 하고 있는 거야. 그것도 가장 멍청한 낭비를. 이십대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면, 결국 우리 엄마 아빠처럼 평생 집도 없이 살게 될 거야. 평생 남의 밑에서 손이 발이 되도록 시키는 일만 해도 자식 결혼하는 데 단 한푼도 보태줄 수 없는 사람이 될 거라고. 네가 대학원 간다고 했을 땐 교수가 되려는 목표라도 있는 줄 알았어. 그것도 아니었다면 왜 네 시간과 돈을 그런 곳에다 투자한 거야? 교수와 동료들이 널 어떻게 보겠니? 너,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모아둔 돈이 없으면 학위라도 있어야 하잖아. 그런 식으로 어정쩡하게 세상 살아봐. 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거야. 네 속에서 나온 자식 한번 네 품에 품어보지 못하는 인생.. 2023. 10. 4.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최은영 [쇼코의 미소]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최은영 p.116 할머니는 일생 동안 인색하고 무정한 사람이었고, 그런 태도로 답답한 인생을 버텨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태도를 경멸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그 무정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그게 할머니의 방식이었다. p.128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 2023. 9. 28.